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피로스 전제군주국 (문단 편집) == 몰락 == 패주한 마누일 콤니노스 두카스는 허울만 남은 테살로니키 제국의 황제가 되었으나, 선대 이피로스 데스포티스 미하일 1세의 서자, [[미하일 2세 콤니노스 두카스]]는 작은아버지를 부정하고 이피로스 전제군주국의 군주가 되었다. 7년 뒤 전통대로 눈을 뽑힌 채 풀려난[* 딸을 이반 아센과 결혼시키면서 복귀를 허락받았다.] 테오도로스가 동생 마누일을 쫓아내고 자기 자식 요안니스에게 테살로니키 황제 자리를 물려주었지만 이피로스 전제군주국은 종이호랑이 테살로니키 제국을 버리고 니케아 제국의 종주권을 인정하는 대가로 군주직을 인정받았다. 미하일 2세는 니케아 제국의 봉신으로써 처음으로 이피로스 전제군주국의 군주가 되었다. 이 주종 관계는 결혼 동맹으로 공고해지는가 싶었는데 니케아의 팽창이 확연해지고 동맹을 성사시킨 니케아 제국 황제의 손녀가 요절하면서 상황은 또 뒤바뀌었다. 이제 라틴 제국을 비롯한 십자군 국가들과 손을 잡은 이피로스 군주국은 1259년 새로운 동맹들과 함께 [[펠라고니아 전투]]에서 니케아 제국에게 패한다. 전투의 세부 상황은 기록이 부족해서 알 수 없지만 미하일 8세는 동맹 사이의 불신을 이용하였다. 그리고 1261년 니케아 제국이 [[제14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탈환하자 이피로스의 입지는 애매해졌다. 한때는 강력한 경쟁자였던 이피로스가 몰락한 뒤 로마 제국의 제위에 오른 니케아 제국 출신의 왕조는 일단 자신들의 우위만 확실하다면 굳이 이피로스와 테살로니키를 멸망시키려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결혼 동맹에도 불구하고 미하일 2세와 그의 뒤를 이른 [[니키포로스 1세 콤니노스 두카스]]는 [[시칠리아 왕국]]을 비롯한 라틴 세력과 로마 제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그러나 나폴리가 로마 제국의 해군에게 패한 상황에서 나폴리의 봉신을 자처하거나, 친 로마 정권을 새로 수립하면서 라틴계를 추방한 뒤에 뜬금없이 그리스 전부를 정복하겠다고 하는 등 외교적으로 많은 갈등을 일으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